글. 이민아(스페이스 세컨뷰 디렉터)
기획전 《내 관에 넣어 줘》
2025.07.19-08.02 스페이스 세컨뷰(Space SecondView)
“세상을 떠날 때 작은 상자 하나만 가져갈 수 있다면 그 안에 무엇을 넣을 것인가”
왜 ‘자신의 죽음’을 다루고자 하는가?
우리는 모두 유한한 삶을 살고 있다. 대부분 죽음을 ‘언제’ 맞이하게 될지 알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병상에 누워 있지 않은 한, 죽음은 여전히 자신과 무관한 ‘타인의 것’이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타인의 죽음’에 대해 애도를 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관심한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자신도 언젠가 죽겠지만 ‘지금’은 아닌 것이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죽음’은 금기어로 자리잡았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필리프 아리에스는 서구 사회에서 인간의 죽음에 대한 태도가 ‘길들여진 죽음’부터 ‘자신의 죽음’, ‘타인의 죽음’, 그리고 ‘금지된 죽음’까지 네 단계로 변화해 왔다고 설명한다. 시기적으로 차이는 있으나 우리 사회도 비슷한 단계를 거쳐 죽음에 대한 태도가 변화되어 왔다. ‘길들여진 죽음’에서 인간은 가족과 공동체 안에서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면, ‘자신의 죽음’에서 인간은 죽음을 개인적인 사건으로 인식하고 자신의 삶에서 벌어지는 온갖 것에 대한 애착을 드러낸다.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도 자기 주도권을 놓지 않으며 자신이 살아온 전 생애를 반성적으로 돌아본다. 반면 ‘타인의 죽음’ 단계에서 인간은 떠나는 자신보다 남겨진 이들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며 애도와 추모의식을 중요하게 다룬다. 죽음이 문학적·수사적으로 묘사되고 일상적이지 않은 극적인 이미지로 나타난다. 그리고 마지막 ‘금지된 죽음’ 단계에 오면 죽음에 대한 주도권은 의료진의 손으로 넘어 가는데, 죽음에 대한 대화는 기피되고 감정 표현은 억제되며, 심지어 죽음은 수치스럽고 금기시해야 할 대상이 된다. 이때부터 죽음이 병원이나 요양시설에서 처리되면서 개인과 사회 모두 죽음을 일상에서 완전히 분리시키게 된다. 이와 같은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역사적 분석은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일상에서 스스로 필멸의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한 듯한 태도를 지니게 된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주의해서 보아야 할 점은 아리에스가 분류한 인간의 죽음에 대한 태도는 시대에 따라 불연속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이 아니라 한 사회 내에서 중첩되어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사회 문화적 변화에 따라 중심점이 이동할 뿐이다.
《내 관에 넣어 줘》는 아직 죽음을 눈앞에 두지 않은 지금, 자신의 죽음을 주체적으로 성찰해 보자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타자화되고 금기시된 죽음이 만연한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죽음을 일상과 단절되지 않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려는 개인적 실천이다. 자신의 죽음을 미리 상상해 보는 시도는 때로 낯설고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시작하면, 감정적으로는 아직 덤덤할 수 있고, 이성적으로도 가장 명료한 지금, 애써 거리를 두었던 미래의 어느 시점을 현재로 소환함으로써 자신의 삶의 여러 측면을 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왜 작은 종이 상자인가?
《내 관에 넣어 줘》 프로젝트는 열 여섯 명의 작가에게 압축 골판지 소재의, 접으면 목침 크기가 되는 작은 상자를 전달하면서 시작된다. 매장보다 화장을 선호하는 현재의 장례 문화에서 보면, 관 속에 무언가를 넣겠다는 발상이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관에 무언가를 담아 떠나겠다는 결심은 자신이 지향해온 유형 또는 무형의 가치를 마지막 순간까지 지키겠다는 의지이자, 결과적으로 남겨진 이들에게 그것을 전하고자 하는 상징적 행위다. 여기서 ‘작은’ 상자는 세상을 떠날 때 정말 가져가고 싶은 단 하나를 선택하게 만드는 장치다. 그리고 ‘종이’ 상자는 세속적 가치와 무관한, 육신과 함께 사라질 가벼움을 상징하도록 선택된 매체다.
《내 관에 넣어 줘》에 참여한 16인의 작가들은 아직은 불가해한 ‘자신의 죽음’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각기 다른 감각과 경험으로 풀어낸다. 관념적으로 머물러 있던 죽음을 작은 상자라는 제한된 형식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은 평범해 보였던 일상 속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대변할 대상을 찾고 그것을 재조명하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작가들은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는 순간 작고 순수한 즐거움이나 소중했던 만남을 떠올리기도 하고, 감정과 관계의 소멸을 아쉬워하기도 하며, 온전히 자신다운 것이 무엇인지 사색에 빠지기도 한다. 자신의 모습 속에서 결국 사랑이 삶의 이유였음을 발견하기도 하며, 소중한 이들과 이전에 결코 하지 못했을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일부 작가들은 자신의 죽음을 단절이 아닌 ‘순환’의 관점으로 재해석한다. 물리적 죽음을 넘어서 인간은 정신적 유산과 정서적 유대를 매개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인식한다. 결국 나의 죽음을 주체적으로 사유하는 작업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깨닫는 과정이며 죽음 속에 삶이, 삶 속에 죽음이 깃들어 있다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과정일 수 있다.
우리는 삶의 어느 순간, 자신의 인생이 ‘잘’ 마무리되기를 바란다. 평온한 상태에서 가족이나 지인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감사를 주고받으며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여전히 죽음에 대한 언급조차 꺼려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죽음이 다가올 때 그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고, 자신의 의지를 온전히 표현할 수 있을까? 죽음을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삶 또한 이야기될 수 있을 것이다.